헌재 ‘인명용 한자 9389개 제한’ 합헌, 5대4로 입법재량 인정
헌법재판소가 이름에 쓸 수 있는 한자를 9389개로 제한한 가족관계등록법 조항을 5대4로 합헌 결정했다. 위헌정족수 1명 차로 행정 편의가 작명권을 누른 셈이다.
헌재는 왜 이름에 쓸 한자를 9389개로 묶어둔 법을 지킨 걸까?
헌법재판소가 5월 3일 이름에 쓸 수 있는 한자를 9389개로 제한한 가족관계등록법 조항을 5대4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청구인은 딸의 이름에 ‘예쁠 래(婡)’ 자를 넣어 출생신고하려다 거부당하자 헌법소원을 냈으나, 헌재는 “사회 구성원이 통상 사용할 수 있는 한자로 범위를 한정할 필요가 있다”며 입법 취지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봤다. 위헌정족수 6명에서 단 1명이 모자라 1차 합헌 결정 이후 10년 만의 재판은 사실상 박빙으로 끝났다.

목차
한 글자 ‘婡’이 어떻게 헌법재판소까지 갔을까?
청구인은 2023년 2월 딸 이름에 ‘예쁠 래(婡)’를 넣어 출생신고서를 냈다가, 가족관계등록법상 ‘통상 사용되는 한자’ 목록에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그는 “자녀의 이름을 지을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곧바로 헌법소원을 청구했고, 사건은 2년여 심리를 거쳐 4월 29일 결정문이 확정됐다. 부모가 자녀에게 어떤 글자를 새기느냐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인격권·가족생활권의 한 단면이라는 점에서 이 사건은 출발선부터 무게가 달랐다.
A father was blocked from registering his daughter’s name with the Hanja 婡 because it sat outside the official 9,389-character list, prompting a 2023 constitutional petition over the right to choose a child’s name.
합헌 5명·위헌 4명, 무엇이 갈렸나?
다수의견 5명은 한자 이름의 신분 식별 기능이 약화됐더라도 “사회공동체가 통상 사용하는 한자로 가족관계등록부의 이름을 한정할 필요성이 줄지 않았다”고 봤다. 또한 추후보완신고나 개명 절차를 통한 구제 수단이 있고, 부모가 사적 용도로는 원하는 한자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 “자녀의 이름을 지을 자유 제한 정도가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반면 정정미·김복형·마은혁·오영준 재판관은 위헌의견을 냈다. 이들은 “이름은 개인의 정체성을 집약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며 당사자 의사가 더 존중돼야 한다”며, 단순한 행정 편의를 위해 한자 범위를 묶어두면 가족생활과 인격의 자유로운 형성이라는 기본권 제한 정도가 중대하다고 지적했다. 위헌정족수 6명에 1명이 모자란 결과는, 다음 사건에서는 결론이 뒤집힐 수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Five justices upheld the cap as a reasonable line for shared social communication, while four dissenters argued that a child’s name is too central to identity to be capped for administrative convenience.
9389자라는 숫자, 어떻게 만들어졌나?
가족관계등록법은 2007년 제정 당시 인명용 한자를 대법원 규칙으로 정하도록 위임했고, 시작점은 1991년 호적예규의 2731자였다. 이후 9차례 개정으로 1995년 2854자, 2001년 4879자, 2005년 5151자, 2009년 5458자, 2015년 8142자로 늘었고, 2024년 5월 대법원은 1070자를 추가해 현재 9389자에 도달했다. 30여 년 만에 약 3.4배로 늘어난 셈이지만, 부모가 원하는 글자가 목록 밖에 있는 사례는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
이름이 거부됐을 때의 구제책도 정해져 있다. 출생신고서에 비인명용 한자를 적으면 가족관계등록부 성명란에 한글로만 기록되며, 부모는 이후 추후보완신고를 통해 한자를 함께 등록하거나 개명 절차를 밟을 수 있다. 다만 새 한자가 인명용 목록에 추가돼야만 정식 등록이 가능하므로, 신청자가 대법원 추가 지정 절차를 별도로 요청해야 한다는 점이 부담으로 남는다.
Korea’s name-Hanja list has expanded from 2,731 characters in 1991 to 9,389 today, yet families still hit the wall when a chosen character falls outside the official register.
다음 헌법소원에서 결론이 뒤집힐 가능성은?
헌재는 2016년에도 같은 쟁점을 합헌으로 판단한 바 있다. 그때는 합헌 6명·위헌 3명이었지만 이번에는 5대4로 좁혀졌다. 한 자릿수 차이로 위헌이 미뤄지는 흐름은 가족관계등록 제도가 여전히 행정 편의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의미인 동시에, 다음 청구에서는 위헌정족수가 채워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일본 호적법이 약 2998자, 중국 통용규범한자표가 8105자로 한자 범위를 정해두는 것과 비교하면, 한국의 9389자는 양적으로는 가장 넓지만 ‘목록 외’ 글자에 대한 유연성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향후 흐름을 가를 변수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인명용 한자 추가 지정 주기와 절차의 투명성이다. 대법원이 비인명용 신고 한자 가운데 어떤 기준으로 추가 여부를 결정하는지 공개될수록, 합헌 논거의 핵심인 ‘구제 수단의 실효성’이 강화된다. 다른 하나는 부모의 작명권을 헌법상 자녀 양육권·인격권의 일부로 명문화하려는 학계·법조계 흐름이다. 이번 결정 직후 시민단체와 법학자들은 “행정 편의가 부모의 정체성 선택을 누른 결과”라며 후속 입법 검토를 요청하고 나섰다.
With the bench split 5–4, a future petition could realistically flip the outcome, especially if Korea benchmarks its system against Japan’s 2,998-character list and China’s 8,105 standard table.
5대4의 무게는 정말 ‘합헌’ 한쪽에만 실려 있을까?
이번 결정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결론보다 그 결론을 떠받친 숫자다. 합헌 5명, 위헌 4명. 위헌정족수에 단 1명이 모자라는 결과는 형식적으로는 합헌 결정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헌법재판소가 제도의 정당성을 확신하지 못했음을 자인한 모양새에 가깝다. 2016년 6대3에서 5대4로 좁혀진 흐름은, 가족관계등록의 행정 편의 논거가 점차 헌법적 근거로서의 설득력을 잃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본질적으로 이 사건은 ‘이름’이라는 단어가 누구의 것이냐는 질문이다. 부모는 자녀의 정체성을 새기는 첫 결정권자고, 국가는 그 정체성을 사회 시스템 안에 등록하는 후속 행위자다. 다수의견은 등록 가능한 한자를 9389개로 제한하는 것이 ‘제한 정도가 크지 않은 일’이라고 봤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자신이 고른 한 글자가 통째로 부정당하는 경험이다. 추후보완신고나 개명 절차가 있다는 위로는, 그 글자가 인명용 목록에 추가될 때까지 자녀의 가족관계등록부에 한글 이름만 남는다는 현실 앞에서 빛을 잃는다.
또 하나 짚어둘 지점은, 한자를 ‘공동체의 식별 도구’로 해석한 다수의견 자체가 이미 시대를 앞서 가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한자 이름이 일상에서 단독으로 쓰이는 경우는 사실상 사라졌고, 주민등록번호·가족관계등록번호 등 디지털 식별자가 그 자리를 대체한 지 오래다. 위헌의견이 “어려운 한자를 등록할 수 없도록 한다고 해서 일반 국민의 편의 증진에 기여하는 바가 크지 않다”고 짚은 대목은, 결정문 안에서도 이미 반박된 다수의견 논거의 빈틈을 정확히 가리킨다.
다음 사건이 다시 헌재 문을 두드릴 때 위헌정족수를 채운다면, 가족관계등록 제도는 30년 만에 가장 큰 손질을 받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부모와 아이 사이의 한 글자는 또 한 번, 행정 편의의 이름으로 한글로만 남는다.
The 5–4 split — one vote short of the unconstitutional threshold — signals that the administrative-convenience defense of Korea’s name-Hanja cap is losing ground inside the bench itself.
자주 묻는 질문
Q. 인명용 한자 목록에 없는 글자로는 절대 신고할 수 없나요?
출생신고서에 비인명용 한자를 적으면 가족관계등록부에는 한글로만 기록됩니다. 이후 해당 글자가 인명용으로 추가 지정되면 추후보완신고로 한자를 등록할 수 있고, 별도 개명 허가 없이 처리할 수 있습니다.Q. 새 한자를 인명용 목록에 추가해 달라는 신청은 누가 하나요?
대법원은 비인명용 한자 신고 사례를 모아 자형·음가·국립국어원 확인 등을 거쳐 정기적으로 인명용 한자표를 개정합니다. 개인이 직접 추가를 청구할 수 있는 공식 창구는 따로 없고, 가족관계등록예규 개정 과정에서 일괄 반영됩니다.Q. 사적인 용도, 예를 들어 명함이나 SNS에서는 어떤 한자를 써도 되나요?
헌재 결정문에서도 명확히 했듯, 인명용 한자 제한은 가족관계등록부 등록에만 적용됩니다. 명함·예술 활동·SNS 등 사적 영역에서는 부모와 본인이 원하는 한자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Q. 일본·중국·대만은 어떻게 다른가요?
일본은 호적법으로 상용한자와 인명용 한자를 합쳐 약 2998자만 인명에 허용합니다. 중국은 통용규범한자표 8105자를 발표해 인명·지명 영역에 1605자(3급)를 배정했고, 대만은 1982년 상용국자표준자체표를 두고 있어 한국과 마찬가지로 등록 한자 범위를 제한합니다.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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