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이 팔린다, 소설 명가 은행나무도 시인 36명과 시인선 출범
텍스트힙 열풍 속 시집 판매가 2019년 대비 42% 뛰자 은행나무·열림원·자음과모음·난다가 잇달아 시인선을 띄운다. 문지·창비 양강 구도가 흔들리는 배경을 짚었다.
시집이 안 팔린다는 통념은 왜 깨졌나?
소설 명가로 알려진 은행나무가 내년 3월부터 시인선을 출간한다. 시인 36명과 이미 출간 계약을 마쳐 5~6년 치 라인업을 확보했다. 열림원, 자음과모음, 문학동네 임프린트 난다도 최근 1~2년 사이 잇달아 시인선을 띄웠다. 교보문고 기준 한국 시집 판매량이 2019년 대비 2025년 42.0% 늘었고, 구매자의 최다 집단이 20대 여성으로 나타나면서 시인선은 상징 자산을 넘어 상업적으로도 성립하는 사업이 됐다. 1975년과 1978년부터 이어진 창비·문학과지성사의 양강 구도에 새로운 도전자들이 등장한 셈이다.

목차
소설 전문 출판사들은 왜 시인선에 뛰어들었나?
은행나무는 최진영의 『구의 증명』, 정유정의 『7년의 밤』을 낸 소설 강세 출판사다. 백다흠 편집장에 따르면 시인선 출간은 오래전부터 염두에 뒀고 2년 전부터 준비를 시작했으며, 김상혁·안미옥 시인이 기획위원으로 참여해 첫 1~5권의 시인을 고르는 작업이 한창이다. 열림원은 1980년 문학 출판으로 출발해 이청준 전집 등 소설에 집중해 왔지만 지난해 1월 '시-LIM 시인선'을 시작해 지금까지 네 권을 냈다. 자음과모음은 1997년 창립 이후 약 30년 만에 첫 공식 시인선을 지난달 출범시켰고, 문학동네 임프린트 난다는 지난해 9월 '난다시편'을 시작했다.
Novel-focused publishers such as Eunhaengnamu, Yeollimwon, Jaeum & Moeum and Nanda have all launched poetry series within the past two years, with Eunhaengnamu already signing 36 poets for a 2027 debut.
문지·창비 양강 체제에 균열이 생기고 있나?
한국 시인선은 창작과비평이 1975년, 문학과지성사가 1978년부터 이어온 두 시리즈가 오랫동안 기준점이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은 641호까지 나왔고 시인 얼굴 크로키와 직사각형 틀 표지는 젊은 세대에게 시인선의 원형 디자인처럼 받아들여진다.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는 동시대 시인들의 시집을 같은 표지로 수십 년간 내는 사례는 다른 나라에서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후발 주자들이 나서는 첫째 이유는 브랜드 위상이다. 자음과모음은 문학 출판사로서 입지를 굳히려면 시인선이 필요하다고 보고 10년 전부터 준비해 왔다. 둘째 이유는 시집이 팔리는 장르가 되면서 낮은 손익분기점이 진입 문턱을 낮췄다는 점이다. 열림원의 첫 시집인 고선경의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은 11쇄를 찍어 누적 2만2000부에 이르렀다.
Changbi and Moonji have anchored Korean poetry series since the 1970s, but newcomers are entering for brand prestige and because rising sales have lowered the break-even bar, as Yeollimwon's 22,000-copy debut title shows.
수치로 본 시집 시장은 얼마나 커졌나?
교보문고 집계에 따르면 한국 시집 판매량은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대비 2024년 39.2%, 2025년 42.0% 늘었고 올해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성·연령별 구매 비중은 20대 여성이 22.7%로 가장 높았다. 예스24 자료에서는 흐름이 더 가파르다. 2025년 10대·20대의 시집 구매는 전년 대비 51.9% 늘었고 10대만 보면 97.2% 급증했다. 2026년 1월 1일부터 3월 12일까지도 10대 구매가 51.5% 증가했다. 2025년 시집 베스트셀러 상위 20종 가운데 7종이 젊은 시인의 작품이었고, 이들 시집의 10대·20대 구매율은 43.2%로 전체 시집 평균의 약 두 배였다. 개별 시집 성과도 뚜렷하다. 자음과모음 시인선 1호인 에밀리 정민 윤의 『내가 우리를 짐승이라 말할 때』는 영문 시 25편과 시인이 직접 옮긴 한글 시 25편을 함께 실었고, 난다시편 1호인 김혜순의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는 미발표작 65편을 담은 15번째 시집이다.
Kyobo data shows poetry sales up 42 percent versus 2019, with women in their twenties the largest buyer group, while Yes24 reports teen purchases nearly doubling in 2025 and young poets taking 7 of the top 20 slots.
시인선 붐은 지속 가능한 흐름인가?
은행나무가 36명분 계약으로 5~6년 치를 미리 확보한 것은 단기 유행이 아니라 장기 시리즈로 설계했다는 신호다. 2024년 시작된 텍스트힙에 이어 2026년에는 시인의 감성에서 출발한 패션과 생활양식을 뜻하는 포엣코어 흐름이 더해졌고, SNS의 필사 열풍도 시집 수요를 떠받치고 있다. 다만 신규 시인선이 늘수록 한정된 시인 풀을 두고 출판사 간 경쟁이 치열해질 수 있고, 표지와 판형으로 정체성을 만들어 온 문지·창비 모델을 얼마나 차별화하느냐가 관건이다. 젊은 독자층이 시장의 성장 동력인 만큼 10대·20대가 다음 세대 시인을 어떻게 발견하느냐에 따라 새 시인선의 성패가 갈릴 전망이다.
Eunhaengnamu's multi-year pipeline signals a long-term bet, supported by the text-hip, poetcore and handwriting trends, but competition for a limited pool of poets and differentiation from Moonji and Changbi will decide who lasts.
시인선 경쟁은 한국 문학 출판에 무엇을 남길까?
이번 흐름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은행나무가 시인 한두 명의 화제작으로 시장을 두드리는 대신 36명분 계약을 먼저 쌓아 두고 시작한다는 점이다. 시집 한 권의 매출은 소설과 비교하면 여전히 작지만, 낮은 손익분기점 위에 수십 권의 시리즈를 얹으면 출판사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백리스트가 된다. 열림원의 첫 시집이 11쇄까지 간 사례는 신인급 시인의 시집도 시리즈라는 틀 안에서 충분히 자생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다시 말해 시인선은 이제 문학 출판사의 명함이자 동시에 수익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문지와 창비가 반세기 동안 지켜 온 자리는 단순한 출간 이력이 아니라 표지와 판형, 편집위원 체계가 만들어 낸 신뢰의 총합이다. 새 시인선들이 같은 방식으로 정면 승부를 걸기보다 젊은 시인, 디아스포라 시인, 기획위원 체제 같은 각자의 색깔을 앞세우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자음과모음이 첫 권을 미국에서 활동하는 에밀리 정민 윤으로 고른 선택이나 난다가 김혜순의 15번째 시집으로 문을 연 선택은 시리즈 정체성을 첫 권으로 선언하는 방식이다.
관건은 독자층의 지속성이다. 시집 시장을 키운 것은 10대와 20대이며, 이들은 필사와 SNS 공유라는 방식으로 시를 소비한다. 이 세대가 30대가 되어서도 시집을 계속 사느냐, 그리고 새 시인선이 다음 세대의 시인을 발굴해 내느냐에 따라 지금의 붐이 구조적 변화로 남을지 결정될 것이다. 시인 풀은 한정돼 있고 출판사는 늘어난 만큼 계약 조건과 편집 역량을 둘러싼 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The poetry series race is turning from a prestige contest into a backlist business model, and its durability will hinge on whether today's teen and twenty-something readers keep buying and whether new series can discover the next generation of poets.
자주 묻는 질문
Q. 은행나무 시인선은 언제 시작되나?
2027년 3월 첫 시집을 낼 예정이다. 시인 36명과 계약을 마쳤고 김상혁·안미옥 시인이 기획위원으로 참여해 첫 1\~5권의 시인을 고르고 있다.Q. 시집 판매는 실제로 얼마나 늘었나?
교보문고 기준 2019년 대비 2024년 39.2%, 2025년 42.0% 증가했다. 예스24 기준으로는 2025년 10대·20대 구매가 51.9% 늘었고 10대는 97.2% 급증했다.Q. 시집을 가장 많이 사는 독자층은 누구인가?
2025년 교보문고 성·연령별 구매 비중에서 20대 여성이 22.7%로 가장 높았다. 젊은 시인의 시집은 10대·20대 구매율이 43.2%로 전체 평균의 약 두 배다.Q. 기존 시인선과 새 시인선의 차이는 무엇인가?
창비시선과 문학과지성 시인선은 각각 1975년, 1978년부터 이어져 641호까지 낸 문지처럼 통일된 표지로 정체성을 쌓았다. 새 시인선은 젊은 시인과 디아스포라 시인 등 출판사별 색깔을 앞세워 차별화를 시도한다.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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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Sources
- ‘시는 안 팔린다’ 옛말…소설 주력 출판사도 시인 36명 모셔왔다 (중앙일보)(NewsArticle)
- 숙원 푼 자음과모음…시인선 1권은 에밀리 정민 윤 (경향신문)(NewsArticle)
- 지상의 고통을 위로하는 김혜순의 바닷속 환상 연가 (한국경제)(NewsArticle)
- 한강도 윤동주도 제쳤다…최근 10년 최다 판매 시집 1위는 (아시아경제)(NewsArticle)
- 반백 년 이어진 시선집, 600개의 세계가 온다 (시사IN)(News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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