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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연구비로 반도체 시약을? 연세대 교수 283건 허위 명세서

연세대 의대 정 교수 연구실이 정부 연구비 관리시스템에 283건의 허위 명세서를 등록한 정황이 드러났다. 반도체·태양광 시약부터 닭가슴살·식권까지, 국가 R&D 예산이 새는 쪼개기 카르텔의 실체를 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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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 기능을 연구하는 실험실에 왜 반도체 시약이 등장했나?

연세대 의과대학 정 모 교수 연구실이 정부 연구비 관리시스템에 실제 거래와 다른 명세서를 등록해 연구비를 집행한 정황이 드러났다. 뉴스타파가 약 5년치 거래 내역을 확보해 대조한 결과, 무려 283건의 허위 명세서가 확인됐다. 인지 기능 연구비로 태양광 전지·반도체 공정용 시약을 샀다고 기재하는가 하면, 실제로는 닭가슴살 도시락과 식당 식권이 결제됐다. 국가 R&D 예산이 어디로 새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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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이 의혹은 어떻게 세상에 드러났나?

발단은 2023년 국민신문고에 접수된 비위 신고였다. 정 교수의 연구비 유용 의혹이 제기됐고 연세대가 특별 감사에 착수했지만, 정작 연구비 부당 집행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대학 내부 감사가 걸러내지 못한 사안을 언론이 다시 파고든 셈이다. 뉴스타파는 내부 제보자를 통해 정 교수 연구실과 시약 납품업체 사이의 5년치 '진짜' 거래 내역을 확보했고, 이를 정부 연구비 관리시스템 등록 명세서와 한 건씩 대조하면서 불일치를 찾아냈다.

A whistleblower report filed in 2023 went nowhere after Yonsei's internal audit cleared the professor, but investigative reporters later obtained five years of real transaction records that told a different story.

등록된 명세서와 실제 거래는 얼마나 달랐나?

핵심은 '두 개의 장부'다. 지난해 3월 28일 정 교수 연구실은 인지 기능 연구비로 299만 5,300원을 썼다며 명세서를 등록했다. 그런데 목록에는 태양광 전지 제작에 쓰이는 'phenyl-c61-butric acid methyl ester'와 반도체 공정용 'hexaflouroacetylacetone'이 올라 있었다. 한 반도체 전문가는 이 물질을 두고 "피부에 닿기만 해도 홍반을 일으켜 세포에 직접 쓸 수 없다"고 설명했다. 연구비 담당자는 "반도체 시약이 있냐"고 되물었고, 15분 뒤 정 교수 본인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반도체 시약을 쓴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실제 거래 명세서에는 해당 시약들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The reagent list registered for a cognitive-function study included solar-cell and semiconductor chemicals that, experts said, could not be used on living cells at all.

숫자로 보면 무엇이 이상한가?

뉴스타파가 확보한 283장의 명세서 가운데 등록 금액과 실제 구매액이 일치한 경우는 단 한 장도 없었다. 3월 28일 건은 등록 299만 5,300원에 실제 255만 2,800원, 7월 18일 건은 등록 299만 4,530원에 실제 195만 3,050원으로 100만 원 넘게 벌어졌다. 결제 목록에는 에어컨 수리비, 다이어트용 닭가슴살 도시락, 고양시 소재 식당의 식권 300만 원어치까지 섞여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등록 금액이 대부분 300만 원에 살짝 못 미치는 299만 원대였다는 점이다. 게다가 물품은 연세대 401호 생리학교실이 아니라, 정 교수가 경기도 고양시 삼송테크노밸리에 세운 개인 회사 쪽으로 배달되고 있었다.

None of the 283 registered invoices matched the actual purchases, and nearly every one was priced just under the 3-million-won threshold — a pattern that points to deliberate splitting.

이것은 한 교수의 일탈인가, 구조의 문제인가?

납품업체 대표들의 증언은 이 사건이 개인 비리를 넘어선다는 점을 시사한다. 300만 원이 넘으면 입찰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금액을 잘게 쪼개 수의계약 한도 안에 맞추는 '쪼개기'가 관행처럼 굳어졌다는 것이다. 연구실이 업체와 외상 거래를 한 뒤 허위 명세서로 연구비를 타내 정산하는 방식이 반복되면, 돈이 실제로 어디에 쓰였는지는 자연스럽게 가려진다. 심지어 대학이 요구하는 시약 사진마저 여러 연구실이 돌려쓴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정부 합동 점검에서도 국가 R&D 부당 집행이 267건·23억 원 규모로 적발된 전례가 있는 만큼, 이번 사안은 검증 시스템 전반의 허점을 다시 묻고 있다.

Vendor testimony suggests this is less an individual crime than an entrenched practice — splitting invoices under the bidding threshold and recycling reagent photos across labs.

왜 이 사건을 '한 실험실의 문제'로만 볼 수 없나?

이번 사안에서 가장 서늘한 대목은 허위 명세서 283건 중 금액이 맞는 것이 단 한 장도 없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그 조작이 지극히 '평범한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300만 원 문턱을 피하려 금액을 잘게 나누고, 외상으로 물건을 받은 뒤 나중에 명세서를 맞추고, 시약 사진마저 여러 연구실이 돌려쓴다는 증언은 이 일이 누군가의 대담한 일탈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굳어진 업무 절차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개인의 도덕성만 탓해서는 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뜻이다.

검증 장치가 겹겹이 있었는데도 걸러지지 않았다는 점도 곱씹어야 한다. 정부 연구비 관리시스템은 명세서와 사진을 요구했지만, 그 사진이 재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는 무력했다. 대학 특별 감사 역시 실제 거래 내역을 손에 쥐지 못한 채 서류만 대조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5년치 '진짜 장부'를 확보한 외부 취재가 있고 나서야 실체가 드러났다는 것은, 현행 감시 체계가 서류의 형식적 완결성만 확인할 뿐 돈의 실제 흐름을 추적하지 못한다는 방증이다.

연구비는 미래 산업의 씨앗을 심는 공적 자금이다. 인지 기능을 연구한다던 실험실 장부에 반도체 시약과 닭가슴살 도시락이 나란히 적히는 순간, 훼손되는 것은 몇백만 원의 예산만이 아니라 '연구는 정직하게 이뤄진다'는 사회적 신뢰 그 자체다. 쪼개기 관행을 걷어내고 실거래 내역을 상시 대조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또 다른 299만 원짜리 명세서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The most chilling part is not the fraud itself but how routine it looked - invoice-splitting and recycled photos suggest an entrenched practice that individual accountability alone cannot fix.

자주 묻는 질문

Q. 왜 하필 등록 금액이 299만 원대에 몰려 있었나? 연구비로 물품을 살 때 건당 300만 원을 넘기면 경쟁 입찰을 거쳐야 한다. 이 절차를 피하려고 금액을 300만 원 바로 아래로 맞춰 여러 건으로 나누는 '쪼개기'가 이뤄졌다는 것이 납품업체 대표의 설명이다.
Q. 연세대 특별 감사에서는 왜 문제가 없다고 나왔나? 2023년 국민신문고 비위 신고로 특별 감사가 진행됐지만, 연구비 부당 집행 의혹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대학 내부 감사가 실제 거래 내역과 등록 명세서를 정밀 대조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Q. 국가 연구비가 개인 회사로 갔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등록 명세서에는 물품이 연세대 생리학교실로 배달됐다고 적혀 있었지만, 납품업체는 실제로는 경기도 고양시로만 납품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곳에는 정 교수가 세운 개인 회사와 연구실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Q. 이런 연구비 유용은 얼마나 흔한 일인가? 정부 합동 점검에서 국가 R&D 부당 집행이 267건, 환수 대상 23억 원 규모로 적발된 사례가 있다. 용도 외 사용, 중복 청구, 세금계산서 취소 후 미환입 등 수법도 다양해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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