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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중박 친일파 유묵, 소장자는 유홍준 관장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애국지사 글씨로 전시했다가 철거한 친일파 박중양 유묵이 유홍준 관장 개인 소장품으로 확인됐다. 추천·차용 절차와 검증 체계를 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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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글씨로 걸렸던 유묵, 왜 관장 소장품이었나?

국립중앙박물관이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에 애국지사 박원근의 글씨라며 내걸었던 유묵 '일반시국은(一飯是國恩)'은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의 작품이었다. 그런데 이 유물의 소유자가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본인이라는 사실이 10월 15일 국회 자료로 확인됐다. 박물관은 "관장 추천을 받아 절차에 따라 차용했다"고 답했다. 전시품 오인에서 시작된 사안이 기관장의 소장품 추천이라는 구조 문제로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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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한 그릇의 밥에 담긴 오인은 어떻게 시작됐나?

'일반시국은'은 한 그릇의 밥도 나라의 은혜라는 뜻으로 임진왜란 승병장 영규대사가 남긴 말로 알려져 있다. 박물관은 작품 말미의 관서 '한인(韓人) 박원근'을 근거로 충북 보은 출신 애국지사 박원근(1912~1950)의 글씨라고 소개했다. 지난 7월 1일 개막한 '우리들의 밥상'은 무령왕릉 출토 그릇부터 삼천 년 전 불탄 볍씨까지 420여 건을 모은 대형 특별전이었고 이 유묵은 그 전시 서사의 한 자리를 맡았다.

균열은 외부 제보에서 왔다. 박원근이 친일파 박중양(1874~1959)이 젊은 시절 쓴 이름이라는 지적이 들어오자 박물관은 그날 관람 종료 직후 작품을 철거했다. 박중양은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을 지낸 인물로 친일인명사전에 올라 있다. 애국지사의 유묵이라 믿고 전시장을 찾았던 유족의 문제 제기가 재검증의 출발점이 됐다.

The museum displayed the calligraphy "Il-ban-si-guk-eun" as the work of independence patriot Park Won-geun, based solely on the signature "Korean Park Won-geun." An outside tip revealed Park Won-geun was the early name of pro-Japanese collaborator Park Jung-yang, and the piece was removed the same evening.

소장자가 기관장이라는 사실은 무엇을 바꾸는가?

재검증 결과 발표까지는 전시품 고증 실패라는 성격이 강했다. 소장자가 관장으로 확인된 10월 15일부터는 성격이 달라졌다. 박물관 설명에 따르면 특별전 출품작은 학예 실무진과 부서 책임자, 관장, 내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회의와 자문을 거쳐 결정되고 실무자에서 부장·실장을 지나 관장으로 올라가는 내부 보고 절차로 확정된다. 이번 유묵은 그 사다리의 맨 위에 있는 사람이 먼저 추천하고 그 사람의 소장품을 빌려 온 경우였다.

문제는 최종 결재권자가 추천한 작품을 아래 단계 실무자가 얼마나 날카롭게 의심할 수 있느냐다. 박물관은 "필체·인물의 이력 등 분야별 전문가의 교차 검증이 충분치 못했다"고 인정했다. 교차 검증이 비어 있던 자리가 하필 관장 추천작이었다는 점은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유 관장은 지난 9월 10일 특별강연에 앞서 "유물의 정확한 의미를 읽지 못한 것은 박물관의 역량 부족이자 실수"라며 사과했다. 소장자가 자신이라는 사실은 그 자리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Once the owner turned out to be the director himself, the case shifted from a curatorial error to a governance question. The museum admits cross-verification was inadequate — on a piece recommended by the very official who signs off on every exhibition list.

숫자로 본 이번 사안의 윤곽은?

박물관은 서예·근현대사·고문헌·보존과학 분야 전문가 7명을 투입해 필적과 낙관, 인물 이력을 조사했다. 근거는 세 겹이었다. 획을 처리하는 방식이 박중양의 알려진 글씨와 유사했다. 인장은 1932년 서예가 김태석이 박중양을 위해 새긴 기록과 일치했다. 박중양이 1896년부터 1903년까지 일본에 유학하며 박원근이라는 이름을 쓰고 글씨를 팔아 학비를 댔다는 이력도 맞물렸다. 관서의 '한인'이라는 표현 역시 당시 일본에 있던 조선인이 쓰던 어법이었다.

시간표는 이렇게 정리된다. 7월 1일 개막, 개막 한 달여 뒤 외부 제보와 즉시 철거, 9월 7일 재검증 결과 발표, 9월 10일 관장 사과, 10월 15일 소장자 확인. 전시는 10월 25일 폐막을 앞두고 있다. 유 관장은 2025년 7월 21일 3년 임기로 취임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500만 부와 문화재청장 4년의 이력을 안고 들어온 자리였다.

Seven experts in calligraphy, modern history, old documents and conservation science traced the work to Park Jung-yang through stroke patterns, a seal carved in 1932, and his 1896-1903 study years in Japan under the name Park Won-geun.

재발 방지 대책은 구조를 건드릴 수 있을까?

박물관이 내놓은 대책은 두 가지다. 전시 계획 단계의 전문가 자문을 체계화해 사전 검증을 강화하고 근현대 분야 전문가 풀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둘 다 필요하지만 이번 사안의 급소를 비껴간다. 검증이 느슨했던 이유가 근현대 전문가가 적어서인지 추천자가 관장이어서인지를 가르지 않으면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난다.

국정감사 시즌과 겹친 점도 변수다. 정연욱 의원실 자료 요구로 소장자가 드러난 만큼 기관장 개인 소장품의 전시 활용 기준, 이해충돌 신고 여부, 차용 심의 기록 같은 질문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박물관및미술관진흥법이나 국립박물관 내부 규정에 기관장 소장품 차용을 따로 다루는 조항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도 함께 지적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27년 상설전 유료화를 추진하며 관람객 650만 명 규모의 세계 3위 박물관으로 체급을 키우는 중이다. 공공성과 거버넌스를 묻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유료화 명분도 흔들린다.

The museum promises systematic expert consultation and a wider pool of modern-history specialists. Neither addresses the core issue: whether staff can question a loan recommended by the director who approves every exhibition.

사과의 주어가 박물관이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이번 사안에서 가장 오래 남을 장면은 유묵의 글씨체가 아니라 사과문의 주어다. 유 관장은 9월 10일 "유물의 정확한 의미를 읽지 못한 것은 박물관의 역량 부족이자 실수"라고 말했다. 문장의 주어는 박물관이다. 그러나 그 유물을 전시 목록에 올린 추천자도, 작품을 빌려준 소장자도 같은 사람이었다. 주어를 기관으로 돌린 사과와 한 달 뒤 국회 자료로 드러난 소유 관계 사이의 거리가 지금의 논란을 키웠다. 소장자가 자신임을 먼저 밝혔다면 사안은 고증 실패의 범위에서 정리됐을지 모른다.

박물관 조직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구조가 왜 위험한지 안다. 특별전 출품작은 실무자에서 부장과 실장을 거쳐 관장에게 올라가는 결재선을 탄다. 그 결재선의 끝에 있는 사람이 먼저 "이 작품을 넣자"고 말하면 아래 단계는 검증이 아니라 확인 작업이 되기 쉽다. 박물관이 인정한 교차 검증의 공백은 전문 인력의 부족이기 이전에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위치의 부재다. 근현대 전문가 풀을 아무리 넓혀도 그 전문가가 관장 추천작에 제동을 걸 권한이 없다면 결과는 반복된다.

유홍준이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도 이 사안을 복잡하게 만든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500만 부와 문화재청장 4년의 이력은 문화유산 대중화의 자산이자 동시에 조직 내부에서 반론을 어렵게 만드는 권위다. 전문성이 높은 기관장일수록 그의 판단을 검증하는 절차는 더 촘촘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관장 개인에 대한 책임 추궁보다 기관장 소장품의 전시 활용 기준과 이해충돌 신고 절차를 문서로 만드는 일이다. 박물관이 2027년 상설전 유료화를 통해 관람객에게 돈을 받겠다고 나선 시점이라면 더욱 그렇다. 입장료를 내는 관람객은 전시된 유물의 설명문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신뢰는 전문가 7명의 사후 조사가 아니라 전시 전의 절차에서 만들어진다.

The most telling detail is the grammar of the apology: the museum was the subject, not the man who recommended and owned the piece. What this case needs is not a personal reckoning but a written rule on borrowing a director's own collection.

자주 묻는 질문

Q. 박중양은 왜 박원근이라는 이름을 썼나요? 박중양의 처음 이름이 박원근입니다. 성인이 된 뒤 중양으로 개명했고 1896년부터 1903년까지 일본 유학 시기에는 박원근이라는 이름으로 글씨를 팔아 학비를 충당했습니다. 공교롭게 충북 보은 출신 애국지사와 이름이 같아 오인이 생겼습니다.
Q. 전시된 유묵은 위작이었나요? 위작 논란이 아닙니다. 글씨 자체는 진품이지만 필자를 애국지사로 잘못 특정한 사안입니다. 박물관은 전문가 7명의 필적·낙관 조사를 통해 필자를 박중양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Q. 기관장 소장품을 박물관 전시에 빌리는 것이 금지돼 있나요? 명시적 금지 규정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다만 추천과 승인을 같은 사람이 하는 구조라면 이해충돌 소지가 생깁니다. 이번 사안이 그 공백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Q. 작품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외부 제보 당일 관람 종료 직후 전시장에서 철거됐습니다. 이후 재검증을 거쳐 필자가 박중양으로 확정됐고 전시에 다시 걸리지 않았습니다. 소유권은 유 관장 개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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